들어가며: 혼돈의 시대를 설명해 줄 한 권의 책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도대체 경제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트럼프의 관세 폭탄 이야기, 미·중 무역 전쟁, 끊이지 않는 전쟁 소식까지. 이런 혼란 속에서 내 자산은 어떻게 지켜야 할지, 앞으로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막막하게 느껴졌다. 그러던 중, 대한민국 대표 '위기론자'로 알려진 박종훈 박사의 신간 『세계 경제 지각 변동』이 눈에 들어왔다. '지각 변동'이라는 제목부터가 지금의 상황이 단순한 위기가 아님을 암시하는 듯해 주저 없이 책을 펼쳤다.
저자 박종훈은 KBS 경제전문기자로 오랫동안 활동하며 9.11 테러나 글로벌 금융위기 같은 역사의 변곡점을 현장에서 취재해 온 베테랑이다. 그의 이전 저서들, 예를 들어 『2020 부의 지각변동』이나 『세대전쟁』 같은 책들을 통해 이미 그의 날카로운 분석과 비관적인(?) 시각은 익히 알고 있었다. 이번 책에서는 과연 어떤 진단을 내렸을지, 그리고 이 혼돈을 헤쳐나갈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책을 관통하는 핵심 메시지: '성장'의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약탈'의 시대
이 책이 내게 던진 가장 충격적인 메시지는 "우리가 알던 좋은 시절, 즉 세계화와 성장의 시대는 완전히 끝났다"는 선언이었다. 저자는 1991년 소련 붕괴 후 30년간 이어진 평화와 번영은 인류 역사의 예외적인 황금기였을 뿐이라고 잘라 말한다. 모두가 함께 파이를 키우던 '성장 게임'의 시대는 저물고, 이제는 한정된 파이를 서로 빼앗는 '약탈 게임'의 시대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그 근본적인 원인은 두 가지다. 첫째, 1970년대 이후로 생산성 향상이 눈에 띄게 둔화했다는 점. 둘째, 전 세계적인 고령화와 생산가능인구 감소라는 피할 수 없는 인구 구조의 변화다. 성장의 엔진이 꺼져버리자, 미국과 중국 같은 강대국들은 자국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른 나라의 성장을 빼앗아 오는 '성장 약탈(growth predation)'에 나서고 있다. 트럼프 같은 스트롱맨의 등장은 이런 구조적 변화의 원인이 아니라, 파이가 줄어드는 것에 대한 대중의 분노와 절망이 만들어낸 '결과'이자 '증상'일 뿐이라는 분석은 특히 인상 깊었다. 리더가 바뀐다고 해서 이 거대한 흐름이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그의 논리는 섬뜩할 정도로 설득력이 있었다.
특별히 와닿았던 부분들: 미국, 중국, 그리고 우리의 현실
1. 저성장의 늪과 '보이지 않는 손'
1장에서 저자는 현재의 저성장이 단순한 경기 침체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임을 명확히 한다. 과거 40년간의 저물가·고성장은 공산권 붕괴로 인한 값싼 노동력과 '팍스 아메리카나' 덕분이었던, 다시 오기 힘든 시절이었다. 이제 성장이 멈추자 유럽의 독일마저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고, 곳곳에서 정치적 불안이 터져 나온다. 결국 경제적 절박함이 트럼프와 같은 지도자를 불러낸 '보이지 않는 손'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은 현재의 정치 현상을 경제적 관점에서 명쾌하게 이해하게 해 주었다.
2. 미국의 '엔드게임'과 중국의 '성장 약탈'
2장과 3장에서 설명하는 미·중의 전략은 이 책의 백미다. 미국은 양적완화로 인한 극심한 불평등과 정치적 양극화라는 내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관세 전쟁을 통해 문제를 바깥으로 떠넘기고 있다. 반면 중국은 한국 1년 예산에 버금가는 550조 원의 보조금을 뿌려 샤오미 같은 자국 기업의 가격 경쟁력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특히 미국의 '제조업 부활' 전략이 사실은 '과거의 산업'에 집착하는 전략적 오류일 수 있다는 지적은 날카로웠다. 미국에 제조업은 이미 경쟁력을 잃은 산업이지만, 중국에게는 여전히 핵심 주력 산업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미국이 앞으로 발행해야 할 천문학적인 국채는 금리를 끌어올려 미국 경제 자체를 질식시킬 '부채 폭탄'이 될 수 있다는 경고는 기축통화국 미국마저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님을 보여주었다.
3. 재편되는 질서와 '한국 경제가 무너지는 이유'
마지막 4장은 나에게 가장 큰 위기감과 동시에 절박함을 안겨주었다. 미·중 패권 경쟁의 한복판에 낀 지정학적 위치, 저출산·고령화라는 내부 시한폭탄. 저자는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살아남을 유일한 길은 과거의 성공 공식인 '제조업 수출 모델'을 버리고 미래 산업으로 전환하는 것뿐이라고 단언한다. 특히 2022년 말 시작된 AI 혁명에 우리가 제대로 도전조차 하지 않고 뒤처진 현실을 '스스로 포기해 버린 상태'라고 질타하는 대목에서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AI, 로보틱스, 바이오 같은 미래 산업에 모든 것을 걸지 않으면, 이 거대한 지각 변동 속에서 한국은 좌초할 것이라는 저자의 외침은 단순한 경고가 아니라 절규처럼 들렸다.
나의 생각: 불편하지만 반드시 필요한 '비관론'
이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 저자의 시각은 철저히 '비관론'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부 서평에서는 저자의 분석이 너무 비관적이라 투자의 기회를 놓치게 할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비관의 비용은 때로 비싸다"는 지적처럼, 위기론에만 매몰되다 보면 성장의 과실을 놓칠 수 있다는 점에 일부 동의한다. 저자가 구체적인 주식 추천 대신 달러나 금 같은 안전자산 보유를 강조하는 것도 이러한 그의 성향을 보여준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의 가치가 바로 그 '불편한 비관론'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는 투자 지침서가 아니다. 대신, 우리가 딛고 서 있는 땅이 얼마나 불안정한 단층선 위에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질학 보고서'에 가깝다. 시장의 막연한 낙관론에 대한 강력한 '스트레스 테스트'를 제공함으로써, 나의 안일한 생각과 기대를 점검하게 만든다.
실제로 책에서 제시된 암울한 전망들은 IMF나 KIEP 같은 주요 기관들의 2025년 경제 전망 보고서와 비교했을 때 놀라울 정도로 일치하는 부분이 많았다. 특히 한국 경제에 대한 0%대 성장률 예측은 저자의 경고가 단순한 기우가 아님을 보여주는 듯했다.
마치며: 지도가 아닌 나침반을 얻다
『세계 경제 지각 변동』은 나에게 상세한 보물 지도를 주지는 않았다. 대신, 폭풍우가 몰아치는 낯선 바다를 항해할 때 반드시 필요한 '나침반'을 손에 쥐여주었다. 어디에 암초가 있고, 어느 방향이 위험한지를 알려주는 이 나침반은 앞으로 나의 자산을 지키고 미래를 준비하는 데 있어 중요한 기준이 될 것이다.
이 책은 세계가 '상생'에서 '약탈'로, '협력'에서 '경쟁'으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그 진단이 불편하고 때로는 두렵게 느껴지지만, 그렇기에 더욱 외면해서는 안 될 현실이다. 이 거대한 변화의 파도 속에서 생존의 길을 모색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봐야 할 필독서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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